오한기 - 『홍학이 된 사나이』
아름다움을 활자를 통해 느껴본 게 상당히 오랜만입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애매한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낸 소설. 마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도입부 장면 혹은 이상의 『오감도』를 보는 듯 했습니다. 한 토막의 애잔함이 책을 덮은 후 길고 길게 아른거렸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어디선가 네가 나타난다. 너는 물수리에게 덤빈다. 물수리는 발톱을 치켜들어 손쉽게 너를 저지한다. 너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난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 붉은 몸을 뒤덮는다. 나는 너를 꼭 안는다. 네가 나를 꼭 안는다. 붉음이 우리 몸을 뒤덮는다. DB가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꽥 지른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 외로움을 즐기기도 해.
저는 이곳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모닥불이, 모닥불이, 모닥불이 존재합니다.
외롭지만 외롭지 않아.
집배원, 오늘은 이 단어가 마음에 들어.
아름다움 - 어쩌면 그것이 이 책 내용의 전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몽롱한 분위기 속 조심스레 선택된, 조약돌 같은 단어의 향연. 이 책은 홍학이라는 키워드로 엮인, 한 편의 초현실적인 시입니다. 원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성추행까지 당하는 한 소녀의 잔혹한 현실. 그녀의 슬픈 트라우마를 홍학의 붉은 빛이 만개한 초현실적 풍경으로 휘감는 이 책은, 난해하고 또 난해합니다.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준 ‘오한기’라는 작가를, 한동안 쉽게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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